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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인권주일, 제4회 사회교리 주간 담화문

보좌신부 2014.12.07 11:40 조회 : 1385

제33회 인권주일, 제4회 사회교리 주간 담화문

인권수호는 교회와 신앙의 의무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평화와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깨어 일어나’ 맞이하기 위한 내적, 외적 준비를 하는 대림 시기입니다. 대림의 의미에 따라 한국 교회는 ‘대림 2주일’을 인권주일로 정하고, 그 주간을 ‘사회교리 주간’으로 정하였습니다. 신앙의 빛으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준비하는 마음으로 신앙과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 오늘 우리 사회 인권의 현실을 돌아봅시다.

1. 교회, 인권 그리고 우리의 현실

인권의 원천은 ‘창조’와 ‘강생’의 신비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어 당신의 모상대로 우리를 만드시고 죄로 얼룩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친히 강생하신 사랑이 인권을 말하는 출발점입니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하느님께 부여받은 인간의 존엄한 권리를 구체적으로 선포합니다.

교회는 “생명이 잉태된 후부터 모체 안에서 발육할 수 있는 권리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생명에 대한 권리, 일치된 가정에서 그리고 인격의 발전에 적합한 장소에서 살 권리, 진리 추구와 인식을 통하여 자신의 지성과 자유를 발전시킬 권리, 그 외에 지상의 물질 재화를 올바르게 취득하여 자신과 식구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동할 권리.”(『백주년』 47항)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평범한 권리로 보이는 위의 구절 앞에 비춰진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루 평균 960명의 생명이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낙태로 죽어갑니다. 부모의 학대와 무관심 속에 고통을 받으며 죽어간 칠곡과 울산의 어린이를 기억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 폭력, 각종 언어, 감정, 물리적, 경제적 폭력 등 우리의 현실은 참담하고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되돌아봅시다. 부모의 권위로 혹은 남편의 권위로 자녀들과 배우자의 정당한 권리를 억누르지 않았는지, 직장 내에서 나보다 낮은 자리에 있는 동료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하거나 임금, 처우 등에 피해를 입히지 않았는지, 소비자의 권위로 서비스 종사자들의 인격에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성직자’라는 이름으로 ‘수도자’라는 이름으로, ‘영향력 있는 평신도’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무시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봅시다. 나아가 그 어떤 대상을 나의 이익과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살펴봅시다.

2. 대림 시기의 준비

대림시기를 보내며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사랑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서로를 사랑했는지(요한 13,34 참고), 남이 나에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만큼 나의 권리에 침해를 받았을 때 남의 권리를 지켜주려 노력했는지(마태 7,12 참고), 나의 힘과 기득권으로 남에게 인격적, 경제적 피해를 주는 것을 성공한 자의 당연한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질문해 봅시다.

우리 사회는 물질적 성공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칙을 무시하는 삶을 지속해왔습니다. 세계가 놀랄 만한 기적적 성공 이면에 윤리적 붕괴가 가져올 피해를 등한시했던 우리는 참담한 결과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한 기업과 당국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었기에, 원칙을 지키고 신앙과 윤리적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을 주저했던 우리 모두가 “미안하다”며 자기 가슴을 치며 보낸 한 해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교회도 세상의 빛과 소금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자성합니다. 신앙을 선포하고, 사회에 관한 교리를 가르치며, 인권을 보호하고, 영혼을 구하기 위해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할 교회(『사목헌장』76항 참조)의 임무를 게을리 하였습니다. 성장의 최면에 걸려 약자의 편에서 진정으로 공감하지 못하면서 쉽게 분노했음을 반성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며, 회심으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한 개인으로서, 하느님 백성으로서 삶과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되는 회심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 우리 스스로 얼마나 기여했는지 점검하라는 부르심입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의심과 대립과 경쟁의 사고방식을 확고히 거부하고, 대신에 복음의 가르침을 선택할 용기를 가지기를 요구하시는 부르심에 응답합시다. 창조하시고 강생하신 사랑을 믿고, 우리의 죄를 반성하며 십자가의 용기를 청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한국 방문을 마치며 여러분에게 남기는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힘을 믿으십시오. 그 화해시키는 은총을 여러분의 마음에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은총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십시오.”(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강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교회의 인권 참여

회심하고 청하는 십자가의 용기는 사회변화를 향한 움직임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참여해야 할 근거를 보여줍니다. 부당하고 불의한 사회구조들 속에서 견고하게 구체화된 악은 결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기초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복음의 기쁨』 59항 참조)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가운데, 인간 존엄과 공동선의 가치들이 위협받을 때 예언자의 소리를 드높임으로써(『복음의 기쁨』 218항 참조)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주는 표징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선교와 정의의 요청 그리고 실천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각종 비리인사의 부적절한 처벌 수위, 산업현장 근로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과도한 무력사용으로 진압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향한 불공정이 그 정도를 강화할 때, 내 자신이 약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관심하거나, 관계자로서 이러한 부정에 참여한다면 또 다른 죄를 짓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대로, 문제의 근본을 치료하고 치유하기보다 자비를 명분삼아 이를 대강 싸매고, 드러난 증상만을 다루는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힘보다 우리의 지식에 의지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유혹도 경계하여야 합니다.

이제 교회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 보호를 강화하고 부당한 차별을 철폐하는 사회적 움직임에 동참할 것입니다. 특히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명확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희생자와 유가족을 기억하는 미사를 지속적으로 봉헌할 것입니다. 기득권을 강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정부의 임무를 등한시 한다면 비판의 소리를 높일 것이며, 부정과 비리를 촉진하는 그 어떤 움직임에도 분연히 일어날 것입니다.

“미안하다”며 가슴을 치고 반성한 한 해, 차가운 바닷물에서 기성세대를 믿으며 스러져간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미래 세대가 인간을 수단으로 취급하고 성장을 제일 가치로 삼는 우리의 다음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삶과 증거의 용기 안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꿈꿀 수 있도록 대림 기간, 창조와 강생의 신비 앞에 우리 죄를 돌아보고 깨어 있는 준비를 합시다.

 

2014년 12월 7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 흥 식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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