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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정성화주간 담화문

보좌신부 2014.12.27 17:11 조회 : 1512

2014년 가정성화주간 담화문

가정과 가난


성탄절은 하느님의 사랑이 아기 예수님을 통해 온 세상에 드러나는 참으로 기쁜 때입니다. 여러분 모두와 함께 성탄의 기쁨을 나누며 여러분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천주교회는 성가정 축일인 오늘부터 이번 한 주간 동안 가정의 의미를 특별히 되새기는 ‘가정성화주간’을 지냅니다. 교황청 가정평의회와 국제 카리타스는 올해 가정사목을 주제로 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임시총회를 준비하면서, 개별교회가 ‘가정과 가난’을 주제로 다뤄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이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가정을 위협하고 무너뜨리는 온갖 형태의 가난, 곧 경제적, 도덕적, 영성적, 사회적, 문화적 가난 등에 주목하면서 현대 가정이 직면한 문제들을 성찰하고자 합니다.

이 시대는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면서 인간 삶이 그 어느 때보다 윤택해졌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이들은 늘 우리 곁에 있으며”(마태 26,11 참조), 가난한 모습은 세상 어디서나 목격되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연재해와 환경오염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크고 작은 분쟁으로 성적 착취는 물론 생명 자체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대륙 간 불균형으로 생필품과 의료 혜택의 빈곤을 호소하는 국가들이 있는가 하면, 빈약한 경제력으로 천연자원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국민들도 있습니다. 심화되는 노령화와 후진국의 출산율 증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고 있으며,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실업과 절망으로 몰아세워 그 가족의 삶을 파탄내고 있습니다.

가난의 진정한 문제는 인간의 존엄에 어긋나는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요인들로 인해 악순환이 된다는 데 있습니다. 막대한 부를 소유한 소수는 더욱더 부를 축척하는 반면에 그 옆에서는 비참한 빈곤이 자라납니다. 그리고 물질적인 번영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가난, 외로움, 희망 없는 절망감 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 대한 존중이 줄어들고, 폭력이 증가하며,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사용하다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소모품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환상에서 출발한 허무한 발전의 최종 희생자는,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그래서 많은 가정이 환상적 행복이 낳은 고통 속에서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채 헤매고 있습니다. 적잖은 가정들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으며, 살기 위해서 인간의 품위마저 저버린 채 고군분투하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가족의 유대가 약화되고 가족관계도 선물과 무상성의 법칙이 아닌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돈의 논리에 자주 휘둘립니다.

그런가 하면, 도덕적으로 빈곤하고 윤리적으로 가난한 가정 역시 위험한 공동체입니다. 가정의 문제를 경제적인 문제로만 국한시킬 수는 없습니다.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가정이라 해도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가정은 건강하지 못합니다. 가정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고 육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장소가 아닙니다. 가정은 사회와 국가의 기본단위로서, 보편적 가치관이 전수되는 자리이며 사회적 문화적 소양을 기르는 곳입니다. 가정은 한 사회의 정신적 도덕적 영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초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가치관과 사회규범이 가정 안에 확립되어야만 자녀에게 풍부한 정신문화를 전수해 줄 수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빈곤하고 정신적으로 가난한 가정은 사회의 건강과 행복에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한 사회의 건강과 행복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가정들의 도덕적 기초와 정신적 수준에 달려있습니다.

사실상 가정과 사회는 상호연대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가정이 올바로 서지 못하면 사회도 제대로 서지 못하고, 사회가 올바로 서지 못하면 그 영향은 고스란히 가정에 전달됩니다. 자녀들은 자기 부모가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유대를 맺고, 그들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모습을 보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관계성을 형성해 나갑니다. 부모들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가운데 가정의 교육적 역할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그 누구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혼자만 행복해질 권리도 없다는 연대의식을 배우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가정은 사회화와 사회연대를 위한 탁월한 장소입니다.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연대성이 취약한 가정들이 그릇된 사이비 종교의 공격에 쉽게 노출됩니다. 그리고 그 영향은 그리스도인 가정에 직간접으로 미치고 있습니다. 이웃에게 무관심하고 냉담한 것은 결국 우리 가정과 가족에게 ‘해악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이 시대 가정들이 떠안은 어려움들은 ‘교회와 사회의 미래인 가정’에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가정의 본래 모습을 생각하고 가정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용기를 내어 혼인의 신비로움과 가정의 아름다움을 선포하라는 표징이자 초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받고 있는 도전과 위기는 선교하는 교회,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교회, 특히 사회의 변두리로 향하는 교회가 되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력한 요청이기도 합니다. 교회인 그리스도인 가정들은 충실성과 인내, 생명을 향한 개방성, 노인들에 대한 존경, 그리고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드러납니다. 이 모든 것의 비밀은 가정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입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주십니다(에페 3,20 참조).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참된 사랑’이었습니다. 가난한 이웃들을 먼저 찾아가는 사랑이었고, ‘벗을 위하여 목숨마저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요한 15,13 참조)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사랑’을 위해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으며”(2코린 8,9 참조), 실제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셔서 일평생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그분은 성부로부터 오는 사랑으로 인해 부유하셨고, 같은 사랑 때문에 가난하게 되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정의 중심으로 모시고 그분만을 주님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다른 가정들과 함께 기도하며 서로 나눠야 합니다. 세상의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의 위협을 극복하는 길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는 하느님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와도 같습니다. 온갖 형태의 가난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집시다. 우리 가정에 예수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그들의 가난에 공감하며 그들과 함께 동행합시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마음과 손길로 다가가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줌으로써 그들이 존엄성을 되찾고 삶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합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들이 함께 살지 못하는 가정들, 집이 없거나 일자리를 찾지 못한 가정들, 그 밖의 이유들로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들을 향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다가갑시다. 도덕적으로 빈곤하고 윤리의식이 빈약한 가정들에게는 복음적 가치관과 건강한 의식을 전달합시다. 위기에 놓인 부부들과 이미 별거 중인 가정들에게도 화해할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갑시다. 그리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참으로 행복한 가정, 참으로 복된 가정으로 거듭 태어나길 기원합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조환길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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